서체 만드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한글에 라틴 글자까지 합치면 대략 12,000자 정도를 디자인해야 하는 지루하다면 지루한 이 작업이 재미있냐고요? 음, 네, 재미있어요. 물론 어마어마한 작업량이 재미있다기보다는 작업 결과물이 주는 흥미로움이 작업 고통을 훨씬 능가한다는 말이지요. 학생 때는 보고서를 특별하게 작성하고 싶어 대여섯 개 간편 서체를 디자인해 사용하곤 했었는데, 작가 생활을 시작하고서는 그마저도 제작 시간이 부담돼 그때그때 필요한 음절만 디자인해 쓰고는 말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건축조각’ 아트 프로젝트 전용 두벌식 완성형 서체를 만들어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체 제작 소프트웨어를 찾아보니 ‘버드폰트 Birdfont’라는 다소 저렴한 앱이 있어 바로 구입했습니다. 장장 8달 동안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와 ‘버드폰트’ 앱을 사용해 ‘건축조각 1.0’ 한글 서체를 제작했어요. 부담 없는 가격에 2바이트 문자를 디자인해 생성할 수 있는 ‘버드폰트’를 제작한 개발자에게 이 자리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버드폰트’에는 없는 몇 가지 기능 때문에 ‘글립스3 Glyphs3’라는 서체 제작 앱을 추가로 구입해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 매킨토시에는 ‘버드폰트’ 앱이 설치되어 있어요. 가끔 ‘버드폰트’ 앱을 사용해 ‘글립스3’로 만든 서체를 열어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서체 정보가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비교 확인한다거나, ‘글립스3’에는 없는 몇 가지 기능을 보충하기도 해요.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그냥 서체 제작 앱을 컴퓨터에 여러 개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기도 합니다.

올해 한글날에도 역시 새로운 서체를 발표할 예정인데요. 서체 디자인 역사상 가독성을 추구하면서도 가독성을 내다 버린 희한한 서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느 모로 보건 비가독형 서체라는 게 넘버 1 특징입니다. 그러니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 많관부! 🙂